작가: 애플망고
출판사: 텐북
출간: 2023.11.03.
애플망고 작가는 '알바르드 저택의 짐승' (에이블 출판)으로 내 주목을 끌었는데 이번 '수집가의 새장'도 전작하고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니까 불평등한 관계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한 명은 갇혀있고, 한 명은 관리한다. 전작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갇혀있었는데 이번에는 여자 주인공이 갇혀 있다. 처음에는 애완동물처럼 시작하다가 점점 관리하는 쪽에서 애정을 주게 되고, 어느 순간 관계는 조금씩 역전된다. 이건 이연지 작가가 '지젤씨의 피' (레진 Lezhin 연재)에서 써먹은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 리디북스 가상세계 로판 베스트 1위를 달리고 있는 '반려인간 (Companion: 노이섭 저, 라렌느 출판)'에서 써먹고 있는 플롯이기도 하다. '수집가의 새장'은 '알바르드 저택의 짐승'이나 '지젤씨의 피', '반려인간'처럼 무겁지 않고 발랄한 기조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줄거리: 상인 길드의 회계를 맡은 헤르미는 마법사에게 밀린 대금을 받으러 간다. 간신히 마탑 안에 잠입해서 마법사 도르미가 돈을 내지 않고 가져간 '요정의 눈물'이라는 보석을 회수하는데, '요정의 눈물'이 담겨있던 액체의 효과로 요정만큼 작게 줄어든다. 다시 사람 크기가 되려면 연구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마법사의 말에, 마법사와 헤르미는 합의하에 프로이 후작에게 헤르미를 팔기로 한다. 요정이라고 속이고... 사람을 싫어하던 후작은 조그만 헤르미에게 정을 붙이고 절대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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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는 다시 원 크기로 돌아오고, 프로이 후작은 헤르미를 다시 감금한다. 조금씩 조금씩 프로이를 설득한 끝에, 헤르미는 하루에 다섯시간 (후작과 같이 먹는 점심시간 빼고 세시간) 성 밖에서 일하는 걸 허락받는다. 헤르미는 프로이 후작의 아이를 임신하고, 둘의 사이는 집착과 감금극을 벗어나 비로소 조금씩 건강하게 변화한다.
감금물은 로판의 단골 소재다.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자신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고, 먹여주는 대로 먹고 입혀주는 대로 입는 감금물. 인권이 박탈된 것 같지만 사실은 휴식에 가까운 감금물. 현대사회가 워낙 힘들어서 그런지 감금물 소재 로판은 은근히 수요가 있다. 탑에 갇힌 것보다 새장에 갇힌 건 더 에로틱하게 느껴져서 그런가 새장도 잘 나온다. 이번 '수집가의 새장'은 도입부 부터 남여 주인공 사이에 크기 차이가 확연해서 (인간 크기와 새의 크기)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했는데, 크기가 커진 남여주인공이 다시 만나는 부분이 제법 매끄럽다. 성적 긴장감이 충만하다.
"다시 구해줘야겠어. 요정이 도망쳤거든."
(중략)
"반드시 검은 머리카락이어야 하고, 피부는 하얀 요정이어야 해."
(중략)
목덜미에 박힌 작은 두 점을 발견한 프로이가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프로이는 지독한 수집가였다. 한 번 손에 들어온 작품은 작은 흠집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았다.
감금물 치고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밝고 해피앤딩이라 댓글도 잘 달리고 인기가 좋은 듯. 내가 보기에도 전작 '알베르드 저택의 짐승'보다 좋은 것 같다.
p.s. 마법사 이름이 도르미가 뭐냐... 도르미가... 귀엽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