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밤오렌지
출간: 2023.11.01. 출간. 연재중
출판사: 로즈엔
밤오렌지 작가는 '사과 아삭아삭'으로 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더 폭넓은 인기는 '자스민을 봐주세요'로 얻은 것 같다. '사과 아삭아삭'은 유부남 반 카르카 공작과 한미한 귀족 가문의 포동포동한 유린 아이플의 원나잇에서 시작하는데... 여기서 단순하고 고전적인 소재, 즉 불륜을 갖고 승부를 봤다. 참고로 한국 독자들은 불륜물을 싫어한다. 스팽킹이나 BDSM물을 읽었으면 읽었지, 불륜물이 나오면 이건 불륜물이라 싫다는 댓글이 달린다. 심지어 남자주인공이 문란하면 그것도 싫다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데 밤오렌지 작가는 이 불륜물을 갖고 아주 경쾌하게 '사과 아삭아삭'을 썼다. 남여주인공의 심리가 잘 이해되도록. 왜 통통하고 볼 것 없는 유린 아이플에게 잘나가는 반 카르카 공작이 빠져드는지 이해가 가도록. 그래서 밤오렌지 작가가 쓰는 건 줄줄줄 따라가게 되더라.
이번에도 밤오렌지 작가는 뭐 야단스러운 소재 없이 불륜 하나만 갖고도 충분히 추잡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남편을 둔 고상한 후작부인이 보잘 것 없는 화가와 스캔들이 난다면 어떨까 라는...
줄거리
아나이스는 아름답고 순진하고 젊은 귀부인이다. 그녀는 어려서 시아센과 좋아지냈는데, 시아센이 가진 것 없어 아나이스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친다. 아나이스가 아버지의 뜻대로 집안에서 맺어주는 남자와 결혼하는 댓가로 시아센은 안전을 보장받는다. 7년 후, 시아센은 장안에 화제를 몰고다니는 화가가 되고, 아나이스의 남편 가르시아 후작은 시아센의 출연을 계기로 조금씩 아나이스에 대한 집착을 높여간다. 아나이스는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안... 가르시아 후작과 시아센은 둘다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데...
75화가 되도록 시아센하고의 정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불륜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아센의 존재는 오히려 가르시아 후작과의 사이를 더 뜨겁게 해주는 촉매 역할만 한다. 그런데도 아슬아슬하고 낯이 뜨겁다.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두 명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도 좋고, 시아센도 좋다. 가르시아에게서 편안함을 얻는 이유도 충분하고, 시아센에게도 설렌다. 이런 유치함, 졸렬함이 치정극의 제 맛이다. 이 테크닉을 제대로 쓴 게 '귀부인와 두 남자' (코르카 저, 로즈엔 출판)이었더랬다. 한 명만 좋으면 차라리 자리 털고 일어날 텐데,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여자의 마음... 이거 자체가 충분히 추문이다. 파티를 열 때에도 시아센이 가장 좋아하는 미트 파이를 준비하고, 시아센이 좋아했던 진주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겠다고 한다. 그러나 가르시아가 좋아하는 레몬 버터크림 케이크도 장만하고, 파티장에서는 후작부인으로서 당당해 보일 법한 붉은 파티 드레스로 갈아입겠다고 작정한다.
용두사미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밤오렌지'의 필력을 믿고 읽는다. 내가 보기엔 가르시아가 최후의 승자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