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피스 슬레이브
작가: 봄밤
출판사: 로튼로즈
출간일: 2022.10.22.
봄밤 작가 전작은 "장난감을 즐기는 열 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장난감..."은 리디에서 별점이 좋지 않다. 현재 3.2점. 막판의 극단적인 플레이 (꿰매버린다...)도 그렇지만 여성 쪽의 욕구가 잘 느껴지지 않고 갖고 노는 쪽의 욕구만이 드러나기 때문인가 싶다. 나같은 경우 봄밤 작가가 내면 무조건 구매하고 보기 때문에 봄밤 작가가 봄밤 작가 했군 하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 이걸 지금 야하다고 썼나?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오피스 슬레이브"는 별점이 4.7이다. 왜 이렇게 별점이 높은가 했더니 일단 가격에 비해 분량이 넉넉하다. 아주 인심이 좋다. 10.4만자에 3천원... 요즘 1.8만자에 천 원 씩 받고 1권, 2권...N권이라며 쪼개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 분량이면 5천원 받아도 될 뻔 했다. 이건 만만치 않은 강점인데 책 한 권에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첫번째는 전형적인 "평행우주에서 (할 수 없이) 성적 노리개가 되는 주인공", 두번째는 권력의 정점에 선 남자와 입밖에 낼 수 없는 롤 플레잉 (구체적으로는 적지 않겠다), 세번째는 마스터를 만난 슬레이브가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Buy one get two free.
줄거리: 주인공 송화율은 잘나가는 IT기업 U에서 직원들에게 성관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임이다. "오피스 슬레이브"의 전반부는 "직원 복지 수면실"(야미치 지음)이나 "은밀한 품평회"(야미치 지음), "러브 체어 연구소" (고추선 지음), "이상한 세계의 모나" (elese 지음)가 하던 방식을 따라간다. 어떤 평행우주가 있는데, 이 평행우주에서는 "내"가 아무하고나 관계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이 써먹는 전개방식이다.
그런데 중간 부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고보니 송화율은 이 회사 대표와 남다른 상호신뢰관계가 있다. 이들은 롤플레이를 즐기는 사이였고, 이 롤플레이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대표의 욕망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 회사 대표는 권창현이라는 벤처투자회사의 대표를 접대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권창현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송화율을 사로잡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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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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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현은 IT 기업 U에서 송화율을 빼내어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다. 보통 평행우주물에서는 "세상이 이렇기 때문에 이 인물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성관계한다"라는 식으로 독자의 죄책감을 누그러뜨리는데, 봄밤은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는다. 송화율이 U에서 일하는 건 그게 사회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송화율 본인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글쎄요. 특수복지 담당자라는 업무 자체가 좀 특수하지 않습니까.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죠. 그런데도 그 일을 선택하신 걸 보면, 송주임이 무언가 그 직종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나는 피식 웃었다. 별말 아니었구나.
"돈 때문이죠. 이 직무가 연봉이 세거든요."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비슷한 다른 직종이 훨씬 더 잘 법니다."
"비슷한 다른 직종요?"
"예를 들면, 창녀라든지."
권창현의 말에 송화율은 화를 내는데, 송화율의 본질은 창녀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권창현은 송화율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구애같은 건 전혀 안먹힌다고 판단하고, 고문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한다. 그리고 봄밤은 "삼림을 헤메는 야생동물 같은 거", "본인의 의지로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힌트를 준다. 그리고는 반나절에 걸친 성적인 고문을 행사해서 송화율을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는다...
어떤 작가는 발랄한 여자 캐릭터를 잘 그린다. 어떤 작가는 불쌍한 남자를 잘 표현한다. 그러나 봄밤 작가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성욕에 가득찬 여자"를 잘 그린다. 지고지순한 여자, 순결한 여자, 똑똑한 여자, 독립적인 여자, 고귀한 여자, 용감한 여자, 그 어느것도 아닌 "성욕에 가득찬 여자"를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건데, 작가 본인이 추구하는 바가 너무너무 확실하다. 보통 이런 야한 소설 읽다보면 "클리셰네,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봄밤 작가가 쓴 건 그렇지 않다. 이건 도저히 따라 쓸 수가 없다. 이런 상상력, 이런 확신, 이런 심리묘사는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