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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자질

알렉산드리아 2022. 3. 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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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얀소흔

출판: 윤송밸리

발간일: 2020.12.28

리뷰: 스물여섯살 김우희는 BDSM 클럽에서 놀다가, 경찰에 의해 연행된다.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 외갓집이 있는 시골로 자발적으로 내려오는데, 이 동네에서 30분 거리에 조폭 은거지와 카지노가 있다. 국회의원인 아버지 김중혁, 검사인 배다른 오빠 김규호, 그리고 새어머니 주선혜는 어서 유학을 가라고 한다. 이 곳에서 김우희는 어렸을 때 만났던 진무헌과 재회한다. 진무헌은 재벌집 아들인데 외조부가 세운 조폭 조직에서 두목을 맡고 있다. 이 둘은 서로의 성향을 알아보고 얽히기 시작하는데...

 

 

얀소흔 (하얗게 태운 자국이란 뜻) 작가는 이른바 '자질 시리즈'로 유명하다. '나쁜 자질' '금수의 자질' '주인의 자질' 짐승의 자질' '집착의 자질' 이렇게 다섯 개가 있다. 물론 다 읽음. 이 자질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은 게 '금수의 자질'이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건 '주인의 자질'. 얀소흔 본인은 저자 소개에서 "로멘스레기통 제작자입니다"라고 자기비하를 한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는 큰 강점이 있다. 남자 주인공을 강렬하게 잘 그린다. 이거 아주 큰 장점이다. 예전에 무슨 일본 만화를 읽다보니, 편집자가 신인작가더러 "당신은 여자애를 귀엽게 잘 그린다"라고 칭찬을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팔릴 만하다. 강렬한 남자 캐릭터를 실감있게 그리는 것 만으로도 작가로서 살아남기에 충분한 장점이다. 

 

로맨스판타지물은 여성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서, 남자들이 종종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질 때가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을 때 왕자님이 어떤 어린 시절을 겪었나, 앞으로 어떻게 살려는 희망을 갖고 있나 관심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신데렐라 신발이 얼마나 아름다웠나, 드레스 색깔은 하늘색인가 아니면 흰 색인가 이런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로판에서는 돈을 펑펑 쓰는 쇼핑 장면이 나온다. 드레스 묘사도 필수) 상상 속에서나마 멋진 나를 즐기려고 읽는 거니까. 왕자는 그냥 왕자다. 대개의 경우 외모가 개연성이고, 왕자라는 게 매력이란 식이다. 

 

 

그런데, 연애소설에서 상대편 캐릭터가 평면적이면 그것도 재미 없다. 얀소흔 작가의 남자 캐릭터들은 말을 분명하게 하고, 자기 욕망이 뭔지 알고 돌진한다. 이런 면이 좋다. 나는 조폭물 아주 싫어하는데, 얀소흔의 '금수의 자질'은 어쩔 수 없이 좋아한다. 

 

"집안에서 날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무헌이 부르튼 입술을 툭 건드리자 우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개새끼...?"
무헌의 눈가에 실금이 갔다. 예쁘게 기어오르는 것도 재주였다. 
"내가 너한테 뭘 많이 잘못했나?"
"그냥 이미지가...효자는 아닐 것 같아서요."
"좋게 봐주어서 고맙네."
"아니면 말구요."

 

음...내가 진무헌이라는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이런 것까지 좋게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이 대사가 특히 맘에 들었다. 연인인 우희가 툭 선을 넘어보는데, "내가 너한테 뭘 많이 잘못했나?"라면서 답한다. 방금 너 뭐라고 했어? 하면서 화를 내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 자기성찰이 되는 인간이다. 

 

그녀를 삼킨 수렁이 자발적으로 우희를 토해냈다. 이런 식의 거절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진심이예요?"
"그래, 가려면 힘껏 가."

 

다른 리뷰에서도 많이 나오는 이야긴데, 진무헌은 도미넌트라면서 서브미시브라는 김우희에게 질질 끌려간다. 이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미묘하게 연인간의 권력다툼을 하는 장면이 좋다. 내용이 고수위라고는 하는데 딱히 더러운 장면은 없다고 생각. 외전도 나왔는데, 이 '금수의 자질'이 김우희의 BDSM 클럽 방문에서 시작된 스토리라서 그런지 그걸로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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